리듬체조나 발레보단 태권도나 합기도를 좋아하던 둘째 수정이를 처음으로 얼바인에 와서 축구팀에 등록하여 한없이 푸른 잔디 위를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던 모습에 뿌듯했었다. 축구는 남자들이 주로 하는 경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바인에 와보니 수 십개의 소녀 축구팀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AYSO라는 청소년 축구 단체에 등록비를 내고 등록을 마치니 한 달쯤 지나 tryout을 하게되었고 또 그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나 팀과 코치가 배정되었다는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
팀의 첫 만남의 자리에서 선수 중 하나의 아빠인 코치를 만나고 주중의 연습시간을 정했다. 같은 팀의 엄마끼리 첫 인사를 마치고 팀 운영을 책임지는 팀 맘(Team Mom)도 정했다. 자원한 팀맘은 서로의 연락처를 적고 이메일로 팀 스낵(간식) 당번을 정하여 보내왔다. 공교롭게도 내가 첫 스낵을 맡게 되었다. 수정이는 두 번째 연습 때 팀 맘으로부터 받은 파란색 유니폼이 맘에 드는지 잘 때도 입고자고 그 다음날 학교에까지 입고 갔다.
첫 게임!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 포장의 과자와 주스를 준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근처 수퍼에 들러 상자째 사가지고 축구 경기가 열리는 공원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경기인데도 노란 옷을 입은 주심과 양팀의 부심들이 모여 각 코치들에게 경기의 규칙을 설명하고 선수들의 명단을 체크하는 등 프로선수들 경기 못지 않게 제법 짜임새를 갖춘 모습이 여간 보기좋은 게 아니었다. 푸른 하늘, 산들바람, 눈부신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와 동시에 열심히 달리고 공을 차고 패스하는 상기된 분홍색 유니폼과 파란색 유니폼의 아이들을 보니 승패의 욕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 했다. 신나게 응원하는 가운데 어느새 첫 번째 쿼터가 끝나자 땀범벅이 된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물 반병을 벌컥 벌컥 들이 마셨다.
하프타임(Half Time)이라는 호각 소리와 함께 다시 물을 마시러 엄마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고 있던 나에게 문득 팀 맘은 ‘오늘 네가 스낵 당번 맞지?’ 하고 묻는다. ‘그럼, 이렇게 준비해왔는 걸’ 하고 나는 상자째 들고 온 과자와 주스를 보여주며 ‘지금 줄까?’ 하고 벌떡 일어났다. 팀 맘은 ‘어머, 과자네?’ 하며 그러면 지금 주지말고 경기가 끝나면 주라고 했다. 한 쪽에선 ‘엄마, 오늘은 과일이 없네요?’ 하는 말이 귀에 스쳐 지나갔다. 내가 머쓱해하자 팀 맘은 세 번째 쿼터가 시작했는데 잠깐 보자며 내 어깨를 톡톡쳤다. 그러면서 하프타임엔 보통 오렌지나 사과, 포도 등 과일을 먹기 좋게 슬라이스 하거나 조그만 비닐백에 담아 나누어 주고, 과자나 음료수는 게임이 모두 끝나고 주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팀의 다른 미국인 엄마나 얼바인에 오래 산 듯 보이는 교포 엄마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모두들 별 일 아니니 괜찮다고 했지만 하프타임에 나눠 주었어야 하는 과일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선수들에게 그리고 엄마들에게 두고두고 미안했었다. 그 후로 이는 사소한 일에서도 미국인과 미국의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축구경기는 15분 4쿼터로 이루어진다. 축구팀 선수들은 첫 번째 쿼터가 끝나면 개인이 준비한 음료를 마시고 두번째 쿼터가 끝나면 스낵당번이 준비한 과일을 먹는다. 세 번째 쿼터에 다시 개인이 준비한 음료를 마시고 마지막 쿼터가 끝나면 스낵당번이 준비한 쿠키나 그레뇰라바와 음료수가 든 봉지를 받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팀 선수들의 동생들을 위해 여분의 스낵을 조금 더 넉넉하게 준비하면 더 좋다고 한다.
이곳의 부모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축구 팀은 봄, 가을 평일에는 2번 정도 연습을 하고 주말에는 팀 대항 경기를 한다. 즉, 아이를 축구팀에 넣으면 한 주에 적어도 세번을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하는 것이다. 평일 연습은 픽업만 한다지만 주말의 경기에는 부모는 물론,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 등 온 가족이 총 동원되어 아이와 이이의 팀을 응원한다. 아이가 크게 아프지 않는 한 예외란 없다.아침 일찍 경기가 있으면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와 먹으면서 응원을 하고 점심 시간 전후에 경기가 있으면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식사도 하지 못한다. 한 여름에는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 없는 축구경기장에서 한 시간을 응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햇볕에서 뛰는 아이들을 생각해 한 시간 내내 서서 응원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한가지 스포츠 팀에 소속되어도 이 정도인데, 두 가지 이상의 스포츠를 하거나 자녀가 셋 이상이라면 어지간한 체력으로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의 부모들 대부분은 주말까지 자신의 시간과 여가를 포기하면서 자녀를 위해 희생한다, 아니 오히려 어려서부터 당신의 부모들이 그래왔듯이 당연하게 여기며 같이 즐기는 듯 보인다.
한국에 있을때에는 경제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학원에 많이 보내면 부모의 도리를 잘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의 부모들은 공부 못지 않게 운동을 열심히 시킨다. 첫 번째 이유는 인생에서 건강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건강한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것이다. 흔히 아이들 가진 엄마들끼리 하는 말이지만, 미국의 대학은 들어가기는 쉬워도 졸업하기가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운동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체력이 서양의 아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요인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얼바인 통합교육구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대부분 한 종목 이상의 스포츠 팀에 소속이 되어 있다. 주요한 구기 종목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지만, 남학생이라면 야구, 축구, 농구, 미식축구, 수구, 수영, 그리고 여학생이라면 소프트볼, 축구, 농구, 수영 팀의 선수로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스포츠 종목마다 주최 운영위원회부터 심판과 코치 그리고 팀 맘까지 모두 부모들이 후원하고 자원봉사를 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 운영위원회에서 각 시즌마다 팀을 조직하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코치와 심판을 모집하고 훈련한다. 자녀를 스포츠 팀에 등록시킬 때 등록비를 받기는 하지만 한 시즌 내내 리그를 운영하고 심판과 코치를 교육하는데 절대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많은 자원봉사자 부모의 헌신이 없다면 그 모든 혜택을 받아 해맑고 건강하게 그리고 스포츠맨쉽이 무엇인지 어려서부터 몸으로 배워가는 아이들이 소속된 얼바인의 스포츠 팀들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수정이의 축구팀은 이번 시즌에 결승에 진출했다. 우리 팀에는 잘하는 선수도 있지만 실력이 좋지 못한 선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팀은 기적처럼 매 경기에 선전하며 드디어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수정이 팀 코치는 같은 팀 선수 중 한 아이의 아빠인데 자신의 딸, 또는 실력이 좋은 스트라이커, 그 누구도 결코 편애하지 않는다. 모든 쿼터에 모든 선수가 골고루 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잘하면 잘하는대로 실력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최선을 다해 목청을 높여가며 지도한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선수마다 격려의 말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수정이에게 2011년이 자신의 축구팀이 결승에 진출한 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서 열심히 노력하면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기적은 최고가 만들지 않는다. 기적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동네 아이의 축구팀에서 나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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